최근 나이키가 공개한 Play New 로컬 광고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Play New 메인 영상 말고도 한국과 일본 로컬광고가 각 공식 유튜브에 올라왔는데요. Play New 문구에 코로나 19가 드리운 시기에 즐거움을 찾자는 취지를 담았다기에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같이 보시죠.
끝없는 도전과 뜨거운 열정을 통해 성공에 다다른 모습이 떠오르던 나이키의 대표 카피 ‘Just Do It’ 달리 최초로 공개한 Play New 영상에는 무거운 분위기를 싹 내려놓았습니다. 가벼운 도전과 실패, 어설픈 아마추어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멋진 스포츠인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냈죠.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과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큰 공감을 샀을 겁니다. (아래 이미지를 누르면 Play New 영상 리뷰글로 이동합니다)
영상을 본 뒤 저는 나이키가 ‘동경의 대상이 아닌 동료로 자리매김하려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후속 광고에서도 일상 속 스포츠와 나이키의 관계를 다룰 거라 추측했죠. 하지만 이어서 공개한 두 편의 로컬 광고를 보니 한참 잘못 짚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Play New 카피 아래 제시하는 새로운 룰은 ‘스포츠를 즐기는 태도’에서 끝나지 않고 ‘기존의 틀 깨기’로 확장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메시지가 더 확실하게 드러나죠. 한국 로컬 광고를 먼저 살펴볼까요.
달라져야 하는 것을 달라지게 하는 힘, A New Day
마구 소리를 지르며 나무라는 코치 앞에 엎드린 여학생들과 바짝 얼어 서 있는 야구부, 운동에 방해된다며 짧게 잘리는 남학생의 머리카락, 선배가 후배에게 당연한 듯 빨랫거리를 넘기는 모습, 심지어 어깨가 성인 손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아이들은 어딘가 불안하거나 불만족스러워 보입니다. 아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억지로 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강압적이고 획일화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솔직한 속마음이 내레이터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옵니다. “언제까지 듣고만 있어야 하는 거지? 이 머리가 도움이 되기는 해? 언제까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하는 걸까? 달라지긴 할까?”
이내 기존의 우리 마음대로, 우리 방식대로 운동하는 이들의 모습에는 웃음이 보입니다. 실수할까 혼날까 걱정하며 굳은 몸보다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촌철살인 마지막 멘트로 마무리. ‘솔직히 좀 즐긴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군요.
체벌은 한때 교육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 잘못한 학생은 벌을 받는다는 논리 아래에 ‘사랑의 매’가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했죠. 법 아래에서도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체벌은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관련 조항이 개정된 이후 일절 허용되지 않으며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잔재는 ‘군기’나 ‘기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뉴스에서 스포츠계에 소위 말하는 군대 문화가 아직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는 야구부 출신 형사가 각목과 쇠파이프로 얻어맞는 장면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연장 쓰는 운동부가 겁나 슬픈 게 맷집이 늘어서 나와’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했죠. 영화를 볼 때는 웃겼는데 곱씹어보니 정말 대사대로 슬픈 장면이었네요.
한국 스포츠계의 어두운 면을 꼬집다
영화니까 과장된 부분이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더 심각한 문제도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는 심석희 선수의 고발이었죠. 2018년 12월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로부터 고교 2학년 때부터 3년4개월간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심선수를 시작으로 최근 몇 년 간 한국 스포츠계의 어두운 부분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번 나이키 광고는 모두가 잘못된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고질적 부분을 꼬집습니다.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를 제대로 저격했죠. 운동선수에게 높은 강도의 훈련과 인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큰 무기를 쥘 수단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을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코치에게 주어진 권한은 남용되기도 하죠. 하라는 대로 한다고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논리 역시 근거가 없지만 그저 이전 세대가 해왔기에 따라온 관습일 뿐입니다.
영상에서는 스포츠라는 주제에 한정 지어 꼬집긴 했지만, 온라인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낸 것을 보니 바뀌어야 하는 건 스포츠계뿐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의 빛바랜 스포츠 정신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판을 짜는 나이키의 메시지에 박수. 브랜드로서 사회문제를 가져와 쓰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어쩜 맞는 소리만 골라 멋지고 통쾌하게 전달하는지 매번 놀랍습니다. 이번 캠페인은 당분간 승승장구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보자보자 나이키 주식이 얼마더라)
말로만? 아니, 변화를 위한 행동까지
국내 Play New 캠페인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컨닝페이퍼가 떡하니 공식 홈페이지에 있었는데! 괜히 헛다리를 짚었군요. 나이키가 Play New 영상에 ‘스포츠의 즐거움을 되찾을 때’를 주로 담아냈다면 A New Day에는 ‘스포츠에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고, 우리에겐 스포츠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메시지에 더 강하게 초점 맞췄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할 메신져에는 앞서 언급했던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 10대 스케이트보드 국가대표 조현주, 우리가 잘 아는 배우 최우식과 아티스트 CL이 있네요. 기존 질서에 굴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이라 이번 캠페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키는 변화의 필요성을 꼬집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움직임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스포츠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약속 8계명을 만들고 스포츠 관련 협회와 스포츠팀, 유명선수들의 서명을 받아 올렸습니다. 박지성 선수의 서명도 보이네요. 광고에 그럴듯한 말을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아 제품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것은 쉽지만,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캠페인 리더의 역할까지 도맡아 해내는 나이키의 마케팅은 정말 멋지네요.